이번 시간에는 포장 설비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이번 저희 회사에서 신규로 진행하는 블리스터 포장라인이 있습니다. 블리스터 포장기부터 시작해서 카토너, 카톤인쇄기, 중량선별기, 파렛타이져까지 완전 자동화설비인데요. 포장 설비는 대부분 자동화 설비라서 고가의 장비들이 많은데, 단독 설비도 아니고 풀라인이기 때문에 상당히 비싼 프로젝트입니다.
그럼 레이아웃 구성부터 업체 선정, 계약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살펴 보겠습니다.
1. 반자동으로? 완전 자동으로?
이번 프로젝트는 저희 회사 창사 이래 가장 큰 금액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약간 부담스러운데요. 그래도 저는 잘할 수 있습니다. 금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설치장소가 협소하여 카토너 후단을 수동포장(반자동)으로 구성할지 아니면 풀 자동라인으로 구성할지의 결정이었습니다.
반자동으로 구성하면 이 분야에서 국내 메이저 회사인 흥아기연으로 결정될 확률이 커지고, 풀자동으로 구성하면 이마를 선정할 가능성이 큰 상태입니다. 여기서 먼저 반자동의 범위와 풀자동화의 범위부터 설명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블리스터 포장을 지나 카토너, 카톤인쇄기, 중량선별기까지는 둘 다 똑같지만, AGG(Aggregation)과 박스포장을, 또 파렛트에 적재를 사람이 하느냐, 기계가 하느냐에서 나뉩니다.
생산팀과 저희 공무팀 회의 끝에 최종 2개 업체를 선정하고, 두 업체의 유력 모델의 도면을 받아 희망하는 룸에 그려보았습니다. 이때 다 아시겠지만 AutoCAD를 사용하게 되는데요.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혹시나 공무팀을 희망하시는 구직자가 있으시다면 AutoCAD는 필수로 다루실 수 있어야 합니다(2D까지만 하실 수 있으면 되니까 부담은 안 가지셔도 됩니다). 본인은 "전기담당 자니까 그런 거 필요 없어"라고 하시는 분은 인정받기 어려우십니다. 멋있는 일을 배정받을 수 없는 상황까지 생깁니다. 그다음 결과는 아시겠죠?
2. 반자동으로 결정
다시 돌아와서, 룸을 변경해 가면서 흥아기연 설비를 그려보고, 이마 설비도 그려보고의 과정을 정말 10번 정도는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생산팀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네요. 담당자로서 저는 정말 상사분들이 결정만 빨리 해주시면 너무 좋을 거 같은데, 점을 찍어주시는 분이 없네요.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흥아기연으로 결정이 나는 듯해서 업체 규격평가서, 레퍼런스 준비 등, 기안서까지 다 작성해서 공장장님에게 재가만 받으면 됐었는데, 이번에는 공장장님께서 완전 자동화로 알아보라고 하시네요. 맙소사. 힘들어서 빨리 끝내려고 밀어붙였는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네요. 특히 흥아기연의 라인은 X-ray 검사기까지 구매해야 해서 정말 많이 준비했는데, 다시 검토하라고 하십니다.
3. 다시 원점으로 시작
쉽게 가는 일은 없는 거 같습니다.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흥아기연의 경우 풀자동으로 할 경우 X-ray 검사기가 2대가 설치되어야 하며 더 빠른 설비로 변경해야 합니다. 물론 이마 설비도 더 빠른 설비로 견적을 요청했습니다. 이마의 경우는 X-ray 검사기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개런티를 하겠다고 하여 X-ray 설비를 빼기로 결정하고 다시 비딩을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흥아기연의 경우 설비들의 덩치가 너무 커서, 우리가 원하는 룸에 설비를 설치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마로 결정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이제는 이것도 점을 찍는구나 하고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공장장님께서 흥아기연 반자동 라인과 이마의 풀라인으로 비교해서 생산성과 비용을 검토해서 다시 보고하라고 하시네요. 보통 반자동 대 반자동, 풀자동화 대 풀자동화로 비교를 하는데, 반자동과 풀자동을 비교하라고 하시네요. 이제는 이마로 결정하나 보다 했었는데, 이것도 아니네요.
아무튼 다시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장님도 본사에 계시는 부문 대표님과 회장님을 설득하시려면 자료가 필요하실 거니까 당연한 요구이실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빨리 결정되어야 설치될 룸을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는데 공사팀에서는 언제 결정되느냐고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네요.
흥아로 결정 났으면 12월에 기안 상신하고 계약해서 아마 1월부터 기계 제작이 시작되고, 공사도 1월부터 시작할 수 있었는데, 본 프로젝트의 시작이 이렇게 되니까 많은 분들이 힘들어지네요.
4. 업체 최종 결정 완료
생산팀과 공장관리팀에서 해당 라인에 적용할 제품의 생산량을 분석해서 향후 Capacity를 고려하여 풀자동화라인으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국산의 반자동 라인과 외산의 풀자동화 라인의 대결은 비용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국산의 반자동으로 결정 날 줄 알았는데, 이마에서 아주 매력적인 제안을 하여 비용 차이가 그리 크게 나지 않았기에 풀자동화로 결정하신 듯합니다. 아무튼 저에게는 흥아기연이든 이마든 빨리 결정해 주시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마로의 최종 결정은 1월 중순에 나왔지만, 또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5. 파렛타이져의 규격 결정이 필요하다
파렛타이져는 박스에 카톤을 넣고 테이핑 하고, 이렇게 포장된 박스에 AGG 라벨을 부착하고, 그 라벨을 리딩하고 파렛트에 적재를 하는 설비인데, 이 설비가 이번에는 문제였습니다. 레이아웃에 적용해 보았던 파렛타이져는 너무 소형으로 제작되는 콤팩트 타입의 설비였던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많은 양을 파렛트에 쌓을 수 없는 모델입니다. 다른 유사 모델로 변경하면 설비가 좀 더 커져서 작업성이 좋지 않은 상태라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생산팀에서는 문제를 삼지 않았습니다. 너무 쉽게 결정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이 아니었는데 너무 감사했죠.
6. 계약도 쉽지 않아...
제작 기간이 8~10개월인 점을 생각하면 많이 늦어진 상태라 최대한 빨리 계약을 체결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계약서 내용을 법무팀이 검토를 해주는데, 이 검토 과정에서도 2주가 넘게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왜냐하면 제조사가 이탈리아이기 때문에 시차 문제가 있어서, 검토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네 차례 서로 검토하고 주고받고 하는 과정에서 2주가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계약까지 잘 마치고, 이제는 설비 제작 착수를 위해 도면 검토가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여기까지가 가장 힘든 과정인데 이제는 끝을 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마에서 박스도면(카톤을 삽입한 박스의 도면으로 파렛타이져에서 중요한 도면)에 빨리 사인해달라고 재촉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론적으로만 계산하고 서명하라는 이마측에 기달려 달라고 하고, 자재팀에 해당 도면을 전달하여 샘플을 만들고, 실제로 카톤을 넣어 보았습니다.
결과는 너무 뻑뻑해서 그 도면대로 박스를 제작하면 안 될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박스의 적정 내경을 측정해서 이마에 사진과 함께 전달했고 지금은 그 도면을 기다라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 킥오프 미팅이 남아 있네요.
계약 전 이탈리아에서 담당자가 한국에 올 일이 있어서 잠깐 들리면서 사전 킥오프 미팅을 했기 때문에 다시 킥오프 미팅을 할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유관부서와 협의하여 진행 여부를 판단할 예정입니다.
여기까지 금번 프로젝트의 초기 과정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대박스 도면과 파렛트에 적재하는 도면에 서명하고, 설비 제작 일정표와 테스트에 필요한 자재 리스트를 받고, 테스트 자재를 준비하는 과정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테스트 자재 준비하는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이탈리아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세관에서 볼 땐 우리가 이마에 수출하는 상황이라 여러 가지 서류를 준비해야 하거든요. FAT 실시 전 4개월 전쯤부터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공백 기간이 길 것 같네요.
* 마치며
오늘도 여기까지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나 설비 구매 프로젝트에 대해서 절차나 프로세스, 각 팀별 책임과 권한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등등이 궁금하신 분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아는 한도에서는 성심성의 것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생산 설비 위주로 유지보수뿐 아니라 이렇게 프로젝트도 10년 정도를 고형제 설비, 포장설비, 바이알 설비, 연고제 설비, 액제 설비 점안제 설비 등을 구매 설계하고 진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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